명품쇼핑 앞으로 중대재해 발생 여부도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 반영된다. 상장회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투자자들에게 신속히 공개된다.
금융위원회는 1일 “중대재해 관련 금융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중대재해 관련 수시공시를 신설하는 한국거래소 공시규정 개정안을 승인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간 유가증권시장·코스닥·코넥스 상장사는 큰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거래소에 수시로 공시를 해왔으나 이번 개정에 따라 노동부에 중대재해 발생 관련 사실을 보고한 당일에 같은 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됐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형사법원 판결 결과를 확인한 당일에 관련 사실과 현황을 공시해야 한다. 바뀐 규정은 상장사 안내 등을 거쳐 오는 20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SG 평가기관 협의체는 이날 중대재해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중대한 사안을 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를 개정했다. 이날부터 적용되는 개정 가이던스에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금융위는 “중대재해 등 중대한 사안이 기업의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높아짐에 따라 보다 명확하게 관리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 발생 사실을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 포함하도록 하는 정기공시 강화도 이뤄진다. 현재는 중대재해 관련 형벌 및 행정조치 사항만 공시되고 있으나 중대재해 발생 사실은 포함되지 않아 투자자 정보제공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금융위는 사업보고서 등에 대상 기간 중 중대재해 발생 사실과 대응조치 등의 공시를 의무화하는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이날 규정 변경 예고했다. 다음 달 10일까지 예고 기간을 거친 개정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금융위 의결을 거쳐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소설가 편혜영(53)은 올해 등단 25주년을 맞았다. <아오이 가든> <재와 빨강> <사육장 쪽으로> 등 강렬한 인상을 뿜어내던 초기 작품부터 2018년 ‘셜리 잭슨상’을 안긴 <홀>까지 편혜영의 작품들은 현대인의 불안과 무기력, 폭력성을 섬뜩하게 그려내왔다. 꾸준한 자기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지만 근작들은 초기보다 일상성에 집중한 느낌도 든다. 그의 초기 팬들에겐 서운한 일이기도 했다. 신작 <어른의 미래>는 강렬함을 원하는 오랜 팬들의 성원에 답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책에 대해 “‘아오이 가든’의 세계까지는 아니지만, 조금 서늘한 기운이 풍기는 소설들을 납량 특집처럼 내봐야겠다고 생각해 묶었다”고 말했다.
<어른의 미래>는 200자 원고지 30장 혹은 50~60장 분량의 짧은 소설 11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보통 단편 소설의 분량이 70장 혹은 80~90장 수준이니 단편의 반 혹은 3분의 2 정도 되는 길이의 소설들이다. 문예지 등에 미리 발표한 작품들도 있지만, ‘한 밤의 새’ ‘신발이 마를 동안’ ‘아는 사람’ ‘모든 고요’ 네 작품은 소설집을 위해 새로 썼다.
짧은 소설이 기존의 단편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그는 “장편이 과거, 현재, 미래 세 개의 시간을 통과한다면 단편은 현재에 대해 얘기한다. 짧은 소설은 이 현재를 좀 더 집중해 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확실히 ‘짧다’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기본 5막 구조에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있다면 절정 단계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편혜영 소설의 긴장감 있는 전개가 짧은 소설 특유의 속도감과 연결되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냉장고’부터 서늘한 기운이 풍긴다. 중학생 김무진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거대한 사건을 두고 전개되지 않음에도 마지막까지 높은 긴장감과 함께 진행된다. 소설의 마지막 냉장고가 열리기 직전까지 독자의 가슴을 조이게 만드는 이야기는 결말과 함께 독자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선사한다. 이야기로부터 연상되는 사회적 맥락을 곱씹게 만드는 힘도 있다.
‘냉장고’는 2019년 즈음 쓴 소설이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을 모티브로 쓴 작품인데 작가는 “사람들이 죽음의 흔적인 비석으로 디딤돌을 놓고 사는 곳, 어떻게든 살려는 의지가 보이는 곳이라 생각해서 인상적으로 봐뒀다가 작품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깊고 검은 구멍’의 주요 소재는 ‘금니’다. 작가는 “구두 수선집에 쓰인 ‘금이빨 삽니다’라는 문구가 항상 궁금했다. 일상적인 공간에 얘기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 그 이미지를 가지고 쓴 소설”이라고 말했다. ‘비닐하우스’는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본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해서 썼다. 작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애청자라고 했다.
그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은 어느 순간 현실이 되기도 했다. 2010년 발표한 <재와 빨강>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세상에 낯선 나라에 고립된 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다시 주목받았다.
엽기적이라고 여겨지기도 했던 편혜영 특유의 상상력은 현실의 재현일까 과잉일까. 작가는 “활동 초기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문학적인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과잉된 상태를 통해 이야기하던 바를 드러냈다. 그런데 과잉된 세계를 계속 이어가려면 과잉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는데, 너무 파괴적이다. 그건 젊은 시절에 가능했다”며 “지금은 현실에서 무언가를 이뤄가는 사람들의 얘기에 훨씬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납량 특집으로 구성하려 했다는 책에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있다. ‘신발이 마를 동안’, ‘아는 사람’ 등이 그렇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바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편 소설 한 권과 소설집을 준비 중이다. 에세이 제안도 많이 들어오지만 편혜영은 여전히 손사래 친다. 그는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돼 있다는 걸 느낀다. 그렇기에 좋아하는 소설을 더 쓰고 싶다. 나중엔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소설만 내자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장편 <홀>을 원작으로 하는 할리우드 영화도 김지운 감독의 연출로 개봉을 준비 중이다. 작가는 “올해 상반기 촬영을 마치고 내년 개봉 예정으로, 많이 진척돼 있는 상황으로 들었다”며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 특히 장모 역할이 훨씬 더 강화될 것으로 보여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