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폰테크 충남과 전북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린 7일 서울역 전광판에 열차 지연 정보가 표시돼 있다.
추석 연휴를 한 달여 앞두고 쌀값이 20㎏당 6만원대로 뛰었다. 지난해 이상 고온과 병해충 피해로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정부가 시장격리 물량을 늘리면서 가격이 올랐다. 정부는 쌀값 안정 대책을 내놨지만, 농민들은 ‘10월 수확기를 앞두고 정부가 추가 매입 물량을 풀면 쌀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쌀 20㎏당 평균 소매가격은 6만454원으로 1년 전(5만1500원)보다 17.5% 올랐다. 밥 한 공기당 쌀값이 300원을 넘어선 것이다. 한 달 전 5만8636원보다 3.1%(1800원) 상승했다.
지난해만 해도 가격이 폭락했던 쌀값이 올해 급등한 이유는 지난해 이상 기후로 재고가 부족해지면서 산지 유통업체 간 벼 확보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박한울 농촌경제연구원 곡물관측팀장은 “지난해 이상 고온과 병해충 피해로 쌀 생산량이 감소했고 도정 수율도 낮아졌다”며 “최근 단경기(묵은쌀이 떨어지고 햅쌀이 나올 무렵)에 들면서 쌀 재고가 소진돼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시장격리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지난해 쌀값 안정을 위해 26만t 규모의 시장격리를 하면서 쌀 공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58만5000t으로 올해 쌀 수요(352만9000t)보다 5만6000t 많았는데, 정부는 그보다 많은 26만t을 시장격리했다.
정부는 쌀값이 계속 오르자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5일까지 정부 양곡 3만t을 대여하는 형식으로 시중에 공급했다. 일단 3만t을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대여한 뒤 내년 3월까지 올해산 햅쌀로 갚도록 한 것이다. 오는 11일부터는 농협 등 대형 유통업체에 제공하는 쌀 할인쿠폰 금액을 20㎏당 3000원에서 5000원으로 확대한다. 쌀 가공식품업체들에는 가공용 쌀 5만t도 추가 공급한다.
일각에선 비축미를 풀라는 요구도 있지만 정부는 올해 흉년이 오지 않는 한 쌀값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리라고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쌀값은 가장 비싼 경기·강원 쌀이 풀리는 10월5일이 가장 높고 전라·충청도 쌀이 풀리는 10월 중순부터 하락한다”며 “이제부터 정부 쌀 물량 3만t이 실제 풀리기 시작한 만큼, 쌀 가격 추이를 보면서 추가 대책을 마련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수확기를 앞두고 추가 방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농민단체도 정부가 섣불리 비축미를 풀면 수확기 햅쌀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병희 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지난해에도 10~12월 수확기 쌀값이 폭락했지만 시장격리 대책의 효과는 농민들이 쌀을 다 판 후에야 발생했다”며 “정부가 올해 수확기인 오는 10~12월 전에 추가 비축 물량을 풀면 쌀값이 떨어져 농가 소득은 또다시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할인쿠폰 정책도 논란거리다. 소비자 입장에선 환영할 수 있으나 농민 입장에선 유통업체가 할인 적용가를 농민에게 전가할 수 있기 떄문이다. 임 총장은 “정부가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할인 쿠폰을 지원하기보다는 농업인들에게 직접 지원해 벼를 더 싸게 시장에 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민단체는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밥 한 그릇이 300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밥 한 공기 소매가가 204원이었다. 이마저 2021년 295원에서 2022년 257원, 2023년 232원으로 점점 떨어지는 추세였다. 밥 한 그릇값이 300원이 되려면 쌀 20㎏ 가격이 6만원이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일본의 ‘쌀 소동’을 반면교사로 삼아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쌀 생산량 감축 정책을 추진하다가 올해 쌀값 폭등 현상을 겪고 한국에서도 쌀을 수입하고 있다. 일본은 비축미 방출을 했으나 폐쇄적 유통 구조 탓에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도 이미 쌀 생산량 감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보조금 정책 등으로 다른 작물 생산을 유도하면서 쌀 재배면적도 2021년 73만2000ha에서 지난해 69만8000ha로 줄었다. 주로 고령층인 영세농 비중은 53%에 달하고, 청년농 유입은 줄고 있어 앞으로 쌀 생산 기반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는 “쌀 농가 과반이 영세농인 상황에서 정부가 과도하게 가격 안정화에만 치중하면 쌀 농가의 생산 의욕을 꺾을 수도 있다”며 “일본의 교훈을 참고해 정부가 단기적인 미봉책으로만 대응하지 말고, 식량 안보와 식량자급률 제고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