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진행 중인 ‘기차 없이 떠나는 춘천 베이커리 TRAVEL’에서 모델이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유동부 치아바타’를 비롯해 ‘자유빵집’, 춘천의 명물 ‘감자밭’ 등 SNS에서 ‘빵지순례(빵+성지순례)’ 필수코스로 불리는 춘천의 유명 빵집을 모았다.
현대차 수소전기차 ‘넥쏘’ 계약 대수가 크게 늘어 판매량도 증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31일 현대차에 따르면 신형 넥쏘는 지난 6월 출시 이후 석달간 6767대가 계약됐다. 이는 넥쏘 1세대 모델이 2018년 출시된 뒤 같은 기간 기록한 계약 대수(1500대)의 4배가 넘는다.
신형 넥쏘는 3개월 전 출시되자마자 1311대가 계약됐으나 다음달인 7월 631대로 주춤했다. 그러나 이달 4825대로 계약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월별 판매 실적도 고무적이다. 신형 넥쏘는 7월 한 달간 1001대가 판매됐다. 넥쏘가 월 1000대 넘게 판매된 것은 2022년 11월(1096대) 이후 2년8개월 만이다. 신차 효과가 빛을 발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제16차 청정에너지 장관회의, 제15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 장관회의 등에 신형 넥쏘 32대를 공식 의전 차량으로 지원했다.
신형 넥쏘는 현대차가 2018년 넥쏘를 출시한 지 7년 만에 내놓은 완전변경 모델이다. 국내 유일의 승용 수소전기차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최대 720㎞다. 시속 100㎞까지 7.8초 만에 가속하는 동력 성능을 가졌다.
시 “운행률 높으면 더 지급”연 1회 ‘회계 점검’ 실시도
조합 “탁상행정·왜곡” 반박‘환승체계 탈퇴’까지 거론
서울 마을버스가 대중교통 환승체계 탈퇴 입장을 밝히며 서울시와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는 그러나 마을버스가 요구하고 있는 재정 추가 지원 대신 28일 “운행률이 높으면 보조금을 더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추가 재정 지원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서울의 마을버스 운수업체는 140개로, 총 1630대의 마을버스가 252개 노선을 운행 중이다. 운전기사는 3000여명이다.
서울시가 재정 추가 지원을 거부한 이유는 이미 마을버스에 대한 충분한 재정 보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23년 8월 900원이던 마을버스 요금을 1200원으로 올렸고, 보조금도 2019년 192억원에서 올해 412억원까지 늘렸다.
시는 마을버스 252개 노선을 조사한 결과 첫·막차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일정하지 않은 배차간격 등 임의운행 사례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시는 실제 운행 차량 대수가 아닌 등록 대수로 보조금을 신청하는 등 회계서류 부실, 업무 외 비용 과다지출 등도 적발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선별 수요에 맞춘 운행 횟수 및 배차 시간 현실화, 실제 운행 대수에 따른 보조금 산정 및 운행률 연동 인센티브 도입을 하기로 했다. 마을버스를 많이 운행할수록 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하겠다는 얘기다.
또 운수사별로 회계법인을 지정해 연 1회씩 정기점검을 실시하는 방안도 내놨다. 점검 과정에서 보조금이 용도 외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면 환수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마을버스운송사업조합은 운송원가 현실화를 요구하며, 서울시가 일방적인 개선안 수용만 요구할 경우 대중교통 환승체계에서 탈퇴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이번 서울시 개선안 발표와 관련해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탁상행정을 한 결과”라며 “운수사들은 매달 구청에 보조금 사용 내역을 제출하고 있고, 목적 외 용도로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마을버스마다 고정적으로 탑승하는 첫차·막차 승객이 있는데 어떤 마을버스가 운행 시간을 임의로 정할 수 있느냐”며 “서울시가 악의적으로 조사 결과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2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5 서울뷰티위크’를 찾은 인플루언서들이 전시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30일까지 열리는 서울뷰티위크는 아모레퍼시픽, 한국콜마 등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며 최신 뷰티 트렌드와 첨단 기술을 볼 수 있다.
<연합뉴스>
“1967년 9월3일. 이날은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측통행을 시작했다. 오전 9시에.” 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 마이아 에켈뢰브의 일기 속 이 구절은, 아무런 수식어도 없이 쓰였지만 사실상 혁명 선언문이었다. 그날 아침, 스웨덴은 교통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었다. 수천년간의 관습, 100만대 차량의 습관, 온 국민의 몸에 밴 ‘왼쪽 본능’을 뒤집은 날이었다. 그것도 단 몇분 만에.
전국에 생중계된 그날, 스톡홀름 거리에서 마지막 전차가 종착역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낯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송 카메라는 전쟁 종식을 기록하듯 전차의 뒷모습을 따라갔고, 어떤 이는 울었고 어떤 이는 웃었다. 그러나 모두 불안했다. 과연 이게 될까?
이런 전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뿌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야심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왼손잡이였고, 무엇보다 세상을 뒤집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황제 즉위 직후 단행한 개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행 방향 변경이었다고 한다. “왼쪽 주행은 구질서다. 앞으로는 오른쪽이다!” 방향 하나 바꾸는 일이 세계를 바꾸는 일이라는 듯이. 물론 이것은 전설에 가깝다는 학자들의 지적도 있지만, 나폴레옹이 정복한 도시마다 실제로 오른쪽 주행을 강제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작은 ‘방향의 반란’이 유럽 대륙을 휩쓸었고, 끝내 영국과 몇몇 예외국가만이 왼쪽을 고수했다.
그런데 유럽 북쪽 끝, 스웨덴은 달랐다. 나폴레옹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이 나라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차는 왼쪽, 사람은 오른쪽’이라는 기묘한 절충을 유지했다. 그러나 절충은 언젠가 충돌을 낳는다. 주변국들은 모두 오른쪽 주행으로 바뀌었고, 국경을 넘는 트럭은 매번 혼란을 겪었다.
사실 스웨덴 의회는 이미 1916년에 우측통행 전환을 결의했다. 그러나 국민들이 거세게 들고일어났다. “왜 그 좋은 왼쪽을 버리느냐?” “우리를 나폴레옹의 유령에게 팔아넘기려 하느냐?” 1955년에는 국민투표까지 실시됐는데,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83% 반대. 거리에는 이런 구호까지 나왔다. “당신 어머니가 길에서 죽는 걸 보고 싶습니까?” 좌측통행은 그들에게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문화였고 정체성이었으며 민족적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의회는 물러서지 않았다. 고래심줄처럼 질기게 시간을 벌었고, 준비를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1967년 9월3일, 스웨덴은 무혈 혁명을 단행했다. 총칼도 진압도 없이, 단지 아침 9시에 모든 차량이 동시에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놀랍게도 아무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교통사고는 줄었고, 사망률도 낮아졌다. 40년간 “죽어도 안 된다”고 외치던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한 것은, 죽어도 안 될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종종 말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뿌리야.” “절대 바꾸면 안 돼.” “너무 위험해.” 그러나 그 말들 속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다. 방향 하나 바꾸는 데도 수십년이 걸리는데, 제도의 골격을 바꾸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해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사의 전환점들은 늘 그런 두려움 속에서 태어났다. 처음엔 ‘유치한 반란’으로, 곧 ‘무모한 실험’으로 조롱받았으나 마침내는 ‘당연한 일상’이 됐다. 우측통행도, 여성 참정권도, 주 5일제도 모두 그랬다.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노조가 생기면 곧 ‘빨갱이 나라’가 될 것이라 했지만, 1987년의 대투쟁 끝에 민주노조는 억센 뿌리로 자라났다. 산재 보상을 확대하면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라 했지만, 2004년의 개혁은 더 많은 생명을 지켜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떠들었지만, 그 제도는 아직도 흔들리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버티고 있다. 죽어도 안 된다던 것들이 결국 우리의 숨이 되고 일상의 질서가 됐다.
지금도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노란봉투법을 제정하자니 경제 무너진다고 하고, 배달노동자 죽음을 막기 위해 플랫폼을 규제하자니 소비자 피해를 운운한다. 새벽배송을 멈추자니 철부지 같은 발상이라 비난하고, 노동이 스며든 빵을 거부하자니 결국 사람들은 달콤함으로 돌아갈 것이라 말한다.
변화의 순간마다 늘 등장하는 익숙한 반대들이다. 이런 반대의 말들 뒤에는 늘 숨은 이익과 권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은밀함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어느새 그들의 언어를 우리의 말인 양 반복한다.
그러니 다시 물어야 한다. 정말, 죽어도 안 되는 일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