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파일 베트남 남중국해 인공섬 면적, 중국 추월 ‘눈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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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121.♡.17.22) | 작성일 | 25-08-25 20:06 | ||
캡파일 베트남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서 인공섬 건설을 확대하면서 그 규모가 조만간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4일 로이터통신은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아시아해양투명성이니셔티브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위성 사진 분석 결과, 베트남은 2021년부터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베트남명 쯔엉사 군도)에서 진행해온 간척사업을 올해 들어 앨리슨·콜린스·이스트·랜즈다운·페틀리 암초 등 5곳으로 새롭게 확장했다. 또 중간 규모 인공섬이 조성된 암보이나 케이와 그리어슨·웨스트 암초 등 3곳에서는 매립 범위를 넓혔다. 이로써 베트남이 점령한 스프래틀리 군도의 21개 섬과 암초 전부가 인공섬으로 확장됐다. 베트남은 2021년 본격적으로 인공섬 조성 공사를 시작해 2024년 6월에는 중국이 조성한 면적의 절반 수준으로 따라붙었다. 보고서에선 “3월 기준 베트남의 인공섬 면적은 중국의 약 70% 수준에 도달했으며 최근 8곳에서의 확장은 조만간 중국을 따라잡거나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됐다. 또 베트남이 매립한 섬과 암초 일부에서는 탄약 저장소와 군수품 창고 등 군사 인프라가 설치되는 모습도 위성 사진에서 확인됐다. 베트남은 현재 스프래틀리 군도에 전투기와 소형 수송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1300m 길이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활주로를 3000m로 확장해 대형 수송기와 정찰기까지 이착륙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왔으며 2013년부터 남중국해의 산호초 등에서 인공섬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스프래틀리 군도 일대에서는 필리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등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3건을 취하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국회 통과를 앞두고 기업들이 소송을 철회하는 움직임이 확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차는 지난 12일 손해배상 소송 3건에 대한 소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벌인 2010·2013·2023년 파업에 대해 현대차가 총 3억6800만원 상당의 손배를 청구한 소송이다. 지회는 2010·2013년 만연한 불법파견을 시정하라며 울산3공장 생산라인을 각각 1시간가량 멈춰 세웠다. 현대차는 2010년 파업에 대해 노동자 2명을 상대로 7500만원을, 2013년 건과 관련해 5명을 상대로 46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부산고법은 2010년 건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37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고, 울산지법은 2013년 건에 대해 2300만여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해 각각 부산지법과 울산지법에서 심리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업 노동자 1명이 지난 1월 숨지자 현대차가 70대 노모에게 손배 책임을 지워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 알려지며 비판이 일기도 했다. 현대차는 2023년 울산4공장을 점거한 파업 노동자 2명에 대해 청구한 2억4700만원 손배소도 취하했다. 23일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현대차가 선제적으로 소송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보고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게 하고, 원청이 노동쟁의를 이유로 천문학적 손배를 노조나 개인에게 청구하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 현대차와 현대제철에 손배소를 취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현대제철도 지난 14일 파업 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46억원대 손배소를 취하했다.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470억원의 소송을 제기했던 한화오션은 현재 소송을 취하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김주영 민주당 의원은 “이번 현대그룹의 사례를 계기로 그간 과도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남용으로 노동자 기본권을 억압해온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아 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오전 일본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한·일과 한·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순방 일정에 돌입했다. 이 대통령은 1박2일간 일본 도쿄에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낮 재일 동포들을 만나 일본에서 생활하며 겪는 애로사항과 제도적 개선 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이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소인수회담·확대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 대통령은 저녁에 열릴 비공개 친교 만찬에도 참석한다. 한·일 정상은 지난 6월17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렸던 캐나다에서 첫 회담을 한 이후 67일 만에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일본 아사히·마이니치·닛케이·산케이 신문과의 공동 서면 인터뷰에서 “양국 간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 저의 신념이자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 원칙”이라며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자”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개인적인 유대의 시간도 깊이 가질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오는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현장 안전을 강조하고 있지만 노동자 산재 사망 사고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21일 전남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29분쯤 순천일반산업단지 내 레미콘 공장에서 간이탱크를 청소하던 노동자 3명이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에 빠졌다. 소방당국은 화학약품 저장 탱크 청소에 투입된 동료 1명이 빠져나오지 못하자 나머지 2명이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함께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상자 3명은 모두 해당 레미콘 공장 소속 임직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후 4시20분쯤 대전 유성구 송강동 한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 하던 50대 남성이 추락해 숨졌다. 경찰은 아파트 외벽 누수에 따른 방수 작업을 하다 추락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전날인 20일 오전 8시35분쯤에는 인천 강화군 선원면 축사에서 지붕 교체 작업을 하던 40대 인도네시아 국적 이주노동자가 4m 아래로 추락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경찰은 작업 당시 추락방지 장치 설치 여부 등 안전수칙이 준수됐는지 확인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남사읍 소재 쿠팡 물류센터 냉동창고에서도 같은 날 오후 9시11분쯤 택배 분류 작업을 하던 50대가 쓰러졌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시간여 뒤 숨졌다. 숨진 노동자는 일용직으로 지난달 초부터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주 1~4회 총 18시간 근무했으며, 하루 최대 근무시간은 8시간이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해 지병이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또 쿠팡 등을 상대로 노동자 교육 및 한랭장해 예방조치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 관계자는 “근무자에게 방한복 등 착용과 안전교육, 사전 체조 등 관련 안전조치를 실시했다”며 “경찰이 지병 등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으며 의료진이 병사로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을 통해 17년 만에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셔틀외교가 복원됐다. 한·일관계에 해빙기가 도래했지만 해결해야 할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 키시마호 사건’이다. 우키시마호는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24일 오후 5시 일본 마이즈루항 인근에서 침몰했다. 이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포함해 최대 8000명의 조선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여전히 단순 침몰인지, 자폭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혜경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대표는 지난 22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이재명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과거 국무총리실 소속 ‘일제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조사과장을 지냈다. 정 대표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지 못한 이유를 “진상 파악에 무관심했던 일본 정부가 당시 제대로 된 실태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 규명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소극적 태도는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출항하기 전 2개의 승선자 명부를 만들어 기업과 기관이 각각 보관하도록 돼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승선자 명부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키시마호 인양 작업은 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뒤인 1950년 3월에서야 이뤄졌다. 정 대표는 “강제동원할 때에는 ‘쏜살같이’ 데려가더니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나 몰라라’ 했다”고 말했다. 우키시마호 침몰을 두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정부는 사건 직후부터 지금까지 우키시마호가 미군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됐으며, 당시 작성한 사몰자 명부를 근거로 조선인 승선자 3735명 중 524명이 숨졌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 대표는 “침몰 일주일 만에 급하게 작성된 사몰자 명부엔 사망자가 빠져 있거나 생존자가 포함되는 등 오류가 많았다”며 “신뢰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사건 직후 해변에서 화장된 수백명의 시신은 524명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부터 약 5년간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정확한 침몰 원인과 승선자 규모, 사망자 수 등의 규명에 실패했다. 다만 생존자와 유족의 구술 등을 통해 파악한 조선인 승선자 수는 6000명에서 최대 8000명에 이르고, 이 중 사망자 수는 3000명 이상일 것이라는 추정적 결과를 내놓았다. 진상 규명 관련 일본 정부의 비협조 탓이 크다. 일부 유족 등은 패전한 일본이 강제동원 증거와 기록을 없애기 위해 우키시마호를 바닷속에 수장시킨 ‘일본 정부의 계획된 학살’ 또는 ‘우키시마호 승무원들에 의한 고의적 자폭’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5월 일본 언론인 후세 유진의 정보공개 요청 이후에야 한국 정부에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75건을 전달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실제 승선자 규모를 확인할 계획이다. 최근 명부 확인 작업에 대한 정부 중간보고회가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정 대표는 이 명부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해당 명부는 일본 정부가 사전에 확보해놓은 승선자 명부가 아니라 사후에 우키시마호 관련 기업 등에서 알음알음 전달받아 취합한 자료일 뿐”이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 관련 자료 발굴에 적극 나서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폰테크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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