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월세 ‘처서 매직’은 옛말?···당분간 ‘체감온도 35도’ 무더위 이어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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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211.♡.232.96) | 작성일 | 25-08-24 07:53 | ||
토지월세 절기상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를 하루 앞둔 22일도 더위는 꺾이지 않겠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다고 밝혔다. 낮 최고기온은 31~37도로 예보했다. 기온과 습도가 매우 높아 주말까지도 체감온도가 35도 안팎으로 오르겠다. 도심과 해안을 중심으로는 열대야도 나타나겠다. 전국에 가끔 구름이 많고 아침까지 충남권 내륙과 전북에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있겠다. 전라 동부와 경북권 남부, 울산·경남 내륙, 제주에 오후와 저녁 사이 소나기가 오겠다.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 일시적으로 기온이 내려가겠으나, 그친 뒤에는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다시 기온이 올라 무덥겠다. 예상 강수량은 대구·경북 남부, 울산·경남 내륙 5~60㎜, 전북·전남 동부 5~40㎜, 제주도 5~20㎜다. 미세먼지 농도는 전 권역이 ‘좋음’~‘보통’ 수준이다. 주식은 투기인가 투자인가? 증권업계에 들어와 30여년을 보냈지만, 여전히 동일한 질문을 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부동산이 삶을 지배하고 주식은 1400만의 투자자가 있음에도 재산 형성의 주인공이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님께 증권회사 입사를 말씀드렸던 날이 떠오른다. 그리 기뻐하지 않으셨다. 할아버님의 형제가 미두(현물 없이 쌀을 팔고 사는 일)를 하셔서 집안이 다 망해 어렵게 살았다는 말씀을 하시며 우려를 앞세우셨다. 사업을 하고 경제에 밝으셨던 분이지만 주식투자는 그저 투기로만 보셨다. 자본시장의 총아인 주식시장을 미두와 헷갈리다니, 아버님의 고루함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식 관련 정책과 법안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관료 그리고 상아탑에 있는 학자의 시각을 대할 때마다 아버님이 정색하시던 표정이 떠오른다. ‘사농공상’ 순서를 따지던 조선의 전근대적 사고는 여전히 작동되고 있었다. 전 세계가 광풍의 시대였다. 1920년 71포인트에 불과했던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1929년 대폭락 직전 381포인트에서 정점을 찍는다.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투기시장 중심에는 주식이 아닌 미두가 위치한다. 한국은 주식시장보다 미두시장이 먼저였다. 1899년 일본 거류민들에 의해 인천미두취인소가 시작되었고, 1920년대 일본의 식민지 쌀 증산 정책에 힘입어 당시 인천 미두시장은 일본 미두시장과 연계되어 대호황기를 맞는다. 1920년대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묘사된 화려한 시대에 부합하는 이가 당시 식민지 조선에도 있었다. ‘미두왕 반복창’이다. 인천미두취인소에선 쌀값의 10%만 먼저 내고 이후 잔금을 정산하는 일종의 선물거래가 이뤄졌다. 오사카 미두시장과 연계해 온갖 투기가 난무했다. 전국에서 일확천금을 노린 자금이 취인소로 몰려들었고, 1918년 시장대리인이 된 일본명 ‘반지로’는 과감한 매매로 미두시장을 지배했다. 반복창이 사면 사람들이 따라 사고, 반복창이 팔면 따라 팔았다. 인천에서 오사카까지 쌀 시세는 그에 따라 좌우됐고 그의 부는 급속히 늘어났다.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알려진 신여성 김후동과 조선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인천에 초호화 주택을 짓기 시작했지만, 완공하지 못하고 파산한다. 미두 시세 조작으로 재판을 받으며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다. 반복창만의 일은 아니었다. 당시 미두시장에서 가산을 탕진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기록이 넘쳐난다. 1931년 제정된 조선취임소령으로 경성주식시장과 인천미두취인소가 합병됐지만, 1932년 군산에 미두시장이 추가로 열릴 정도로 미두는 여전히 투기의 중심이었다. 해방되고 1949년 11월 대한증권주식회사가 설립돼 증권거래가 시작된다. 당시 언론은 합법적으로 도박을 장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가득했다. 일제강점기 투기시장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956년 증권거래소가 설립되고 1962년 증권거래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에 현대적 의미의 증권시장이 열렸다. 하지만 건전한 투자보다 세력에 의한 투기가 만연했다. 오랫동안 한국의 관료와 학계는 증시를 규제해야 할 투기시장으로 인식한다. 1992년 1월부터 외국인 직접 투자가 허용되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외부에서 한국 증시를 주시하게 됐지만 내부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선언했지만 아직 정책 전반에 걸친 확신은 미흡하다. 외국의 투기자본을 막아야 한다는 지배주주의 논리는 여전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주식투기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에 대한 학계의 비판도 계속된다. 정부 역시 시장의 자생적 변화를 믿기보다 우려 섞인 시선으로 개입한다. 주식 관련 세제도 지나치게 복잡하다. 길게 보면 거래세는 없애고,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되 보유기간에 따라 차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외국인 투기자들이 한국 기업에 투기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지배주주가 외국의 투기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는 소수주주의 지지를 얻으면 된다. 그것이 공정한 주주자본주의다. 정부와 법 뒤에 숨어서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총수자본주의는 전근대적인 잔재일 뿐이다. 한국 경제가 이미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어서는 선진국 수준이 되었음에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에 한국 증시가 편입되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마치 다 자란 어른이 청소년기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몸에 맞는 옷을 새로 갖춰 입어야 하지만, 맞춤옷을 선물할 사람들은 여전히 과거의 시선으로 주식시장을 바라본다. 한국 증시는 100년 동안이나 투기라는 혐오의 세상에 놓여 있었다. 이제는 그 세상을 벗어나야 한다. 거버넌스 개혁과 세법 개정이 두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주식의 시대가 열려야만, 자산소득에 의한 선순환이 가능해져 성장률이 회복되고 재정이 보강된다. 정부는 모두를 설득할 순 없다. 새로운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료, 정치인, 학계의 우려가 크게 투영되는 법이지만, 정부의 투자자들을 향한 ‘신호 보내기’가 후퇴해서는 안 된다. 가치에 기반한 한국 증시의 진화에 베팅한 투자자 누구도 100년 전의 미두시장으로 회군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듣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일리야 카민스키 지음 | 박종주 옮김가망서사 | 96쪽 | 1만9000원 작은 마을 바센카에 어느 날 군대가 들어와 인형극을 보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해산을 명령한다.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소년 페타는 군대의 해산 명령을 듣지 못하고 결국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저항의 의미로 군인들의 소리를 듣지 않기로 한다. 폭력과 억압에 맞서는 무기로 침묵을 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출신 시인 일리야 카민스키는 가상의 마을 바센카를 배경으로 군대에 맞서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서사시로 그린다. 시는 헬리콥터가 거리를 폭격하고 광장에서 시민들이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사랑을 하고 신혼을 보내고 아기가 태어나는 일상을 찬란하게 묘사한다. 전쟁이라는 비극 속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저항하는 자들의 침묵이 소스라치게 선명한 소리를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약자들의 삶과 변화하는 인간성도 비춘다. 마을 사람들에게 수어를 가르치며 저항에 앞장선 소냐와 알폰소는 총칼로 무장한 군인들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혁명을 부추긴 인형극장 주인 갈랴는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 장기화한 혼란과 공포 속에서 분열하는 연대, 인간이 가장 나중까지 지닌 것은 무엇인지를 노래하는 시어는 슬프면서도 애틋하다. 시의 배경인 바센카는 가상의 마을이지만 온전히 상상된 곳은 아니다. 작가 카민스키는 1977년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영토였고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일부인 오데사에서 태어나 소련 해체 직후인 16세에 고향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네 살 때 유행성이하선염을 앓고 청력을 잃은 개인적 경험 또한 반영됐다. 바센카는 지금도 무력분쟁 중인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가자와도 연결돼 있다. 비극과 먼 곳에서, 아름답고도 비통한 시어로 건네받는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살며 전쟁 중인 고향을 바라보는 시인의 감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마르첼 디르주스 지음 | 정지영 옮김아르테 | 412쪽 | 3만원 부침이 있긴 했으나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공기와도 같았다. 이 땅에 다시 독재정권이 발붙일 곳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난해 12·3 불법계엄으로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젊은이들은 영화에서나 봤던 일을 현실에서 겪었고, 젊은 시절 계엄의 공포에 떨었던 이들은 40여년이 흘러 다시 그 공포와 마주했다. 다시 독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지금, 이 책이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했다. 오랜 기간 독재자를 연구하던 저자는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양조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일하던 2013년, 종교 지도자가 대통령을 겨냥해 일으킨 쿠데타를 목격한다.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으나 이 같은 강렬한 경험은 책 집필로 이어졌다. 저자는 독재자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권위주의 체제의 위협에 대처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학문적 연구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독재자들의 생존 전략과 권력 유지 메커니즘 등을 분석한다. 독재자의 몰락은 독재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은 소수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유권자인 국민 모두를 상대로 하는 반면, 독재체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소수에 의해 독재자가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1950~2012년 권위주의적 지도자 473명이 권력을 잃었는데 이 중 65%가 정권 내부자에 의해 제거됐다. 독재자를 떠올리면 흔히 총과 칼을 앞세운 모습이 그려지지만 저자는 ‘정치권력은 총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있다’고 짚는다. 국민에게 총을 겨눠야만 유지되는 정권은 붕괴되고 만다는 것이다. 문제는 독재자가 무너져도 그 이후를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최악의 경우 또 다른 폭력적인 충돌과 혼란을 낳기도 한다. 독재자의 몰락에 대한 고민은 곧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회복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수원대형로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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