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법무법인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지난 2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구속기소하면서 이제 ‘통일교 청탁 사슬’의 정점인 한학자 통일교 총재 기소만을 남겨두고 있다. 특검은 의혹의 마지막 고리인 한 총재에 대해 추석명절 연휴 중 소환조사를 하고 오는 10일쯤 기소할 방침이다.
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특검은 통일교 측이 교단 현안을 청탁하는 데 활용한 인물들에 대한 신병 확보를 하고 잇따라 재판에 넘겼다. 통일교 측은 권성동 의원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소통하고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금품을 건네는 등 ‘투 트랙’ 청탁을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특검은 권 의원을 비롯해 전씨와 김 여사, 청탁 실행 역할을 했던 통일교 전 세계본부장 윤영호씨 등을 모두 재판에 넘겼다.
이제 통일교 청탁 의혹의 ‘최종 결재자’로 지목된 한 총재 처분만 남은 상황이다. 한 총재 측은 최근 구속적부심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구속 기간이 오는 12일까지로 늘어났다. 특검은 한 총재에 대해 오는 10일 기소할 방침이다. 10일은 구속기간 만료 전까지 남은 유일한 평일이다.
특검은 추석 연휴 중인 오는 4일 한 총재 소환조사를 계획했으나 불발됐다. 이날 한 총재 측은 건강상 사유를 들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앞서 지난 2일에도 특검은 출석을 통보했으나 한 총재 측이 당일 오전 건강상 사유를 적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한 총재는 자신이 받는 혐의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한 총재는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된 네 가지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2022년 1월5일 권 의원에게 통일교 지원 등을 청탁하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전달하고, 20대 대선 전 통일교 자금으로 국민의힘 광역시도당 등에 총 2억1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는다. 같은 해 4~7월엔 윤씨가 전씨를 통해 김 여사에게 그라프 목걸이 등 8000만원대 청탁용 선물을 전달하도록 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 이 금품을 마련하기 위해 통일교 자금을 활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를 받는다.
같은 해 10월 권 의원이 윤씨에게 전한 통일교 임원 등의 미국 원정도박 수사 정보를 듣고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있다. 한 총재와 같은 혐의를 받는 한 총재의 전 비서실장 정모씨에 대해서도 특검은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한 총재와 같이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은 정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한 총재 기소 후 특검은 이들이 조직적으로 정치 개입을 시도했는지 살펴보는 등 ‘정교유착 의혹’ 수사를 이어간다. 한 총재 등 통일교 측은 김 여사의 요청으로 2023년 국민의힘 전당대회 전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원하는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통일교인을 집단 가입시킨 의혹을 받고 있다. 최근 특검은 국민의힘 데이터베이스 관리업체 및 국민의힘 경남도당을 압수수색하면서 11만~12만명의 통일교인 추정 당원 명단과 통일교 추천인이 적혀있는 입당원서 묶음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한 총재가 2022년 2~3월 권 의원에게 추가 정치자금을 전달한 의혹의 실체도 밝혀내야 할 지점이다.
12·3 불법계엄 관련 내란·외환 특별검사팀이 수사를 시작한 지 9일로 114일째다. 넉 달 가까운 기간 전직 대통령과 국무총리, 현직 국회의장, 전·현직 장관과 군 장성들이 각기 다른 방식과 태도로 특검에 출석했다. 어떤 고위공무원은 기자들을 피해 달음박질해 청사로 들어갔고, 한 장군은 피의자 조사를 앞두고 기자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매일 그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엄혹한 조사 목전에서 이들이 보인 각기 다른 반응을 관찰해 정리했다.
특검 수사 중 출석 장면에 가장 큰 관심이 쏠렸던 인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전직 대통령이자 이 사건 정점에 있는 인물이어서도 그렇지만, 지난 6월28일 첫 출석 당일까지도 출석 방식을 놓고 특검과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청사 지하 주차장을 통해 비공개로 들여보내 달라고 특검에 요청했지만 특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 측 변호인단은 당일 무작정 지하주차장으로 간 다음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공공연히 밝혔고, 특검 측은 “출석으로 보지 않겠다”며 맞섰다.
당일 포토라인은 서울고검 청사 1층에 설치됐다. 윤 전 대통령의 첫 공개 출석인 만큼 현장에는 기자 수십 명과 대통령경호처 직원, 전직 대통령 경호 규정에 따라 출동한 경찰들로 붐볐다. 어디선가 ‘윤 전 대통령이 지하로 갔다’는 얘기를 듣고 한 기자가 벌떡 일어서자 경호원이 제지하려 민첩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을 실은 승합차는 결국 지하가 아닌 1층 현관으로 올라왔고, 감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이번에도 진술거부권 행사할 거냐’ 등을 묻는 취재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청사로 들어갔다.
‘국정 2인자’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굴욕 출석’으로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2일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된 한 전 총리는 서울고검 청사 1층 자동문 현관으로 향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 자동문은 보안 출입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문으로, 평소엔 잠겨 있다. 한 전 총리를 안내하러 나온 수사관이 그의 팔을 잡고 측면 쪽문으로 안내했고 이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담기면서 한 전 총리가 강제 연행되는 것처럼 비쳤다. 이를 의식한 특검은 이후 한 전 총리를 소환할 때는 자동문 현관을 열어 두고 여기에 포토라인을 설치한 뒤 이를 통해 들어가도록 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8월19일 2차 출석 당시 취재진의 질문에 “고생 많으시다”고 말한 것 외엔 별도 발언을 하지 않았다.
출석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힌 피의자도 있다. ‘평양 무인기 작전’을 직접 실행한 김용대 국군드론작전사령관은 첫 특검 조사를 받은 지난 7월17일 정복을 입고 출석해 청사 1층 출입구 앞에서 짧은 기자회견을 했다. 김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굳은 표정으로 “저의 모든 행동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지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견문을 다 읽은 뒤 취재진 카메라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그는 9차례 넘는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 이례적으로 매 차례 전투복을 입고 출석했다.
대부분 수사기관 조사를 앞둔 사람들은 긴장하거나 예민해져 있기 마련이지만 일부 소환자들은 비교적 편안한 태도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무인기 작전을 가장 윗선에서 지휘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승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피의자로 전환된 후 첫 조사를 받으러 온 지난 8월17일 지하주차장을 통해 출석하면서 기자를 만나 피의자 조사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사복 차림의 이 본부장은 기자의 명함을 받고는 “경향신문의 다른 기자와 친분이 있다”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지난달 18일 첫 특검 조사를 받으러 온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지하주차장에서 기자를 만나 “나도 기자 시절 뻗치기(기자가 취재원을 만나기 위해 현장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는 취재 방식을 가리키는 은어)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행한 변호인에게 “기자들에게 명함을 건네라”고 먼저 제안하기도 했다.
반대로 예민한 성격을 취재진에게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내란 중요임무종사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는데, 특검 협의와 달리 포토라인을 피해 자의적으로 지하주차장 출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도 기자를 마주쳤고 ‘계엄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지시했나’ 등을 묻자 “당신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내용인가” “쓸데없는 소리” 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조사실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