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전설투표 10월의 함안은 빛과 소리로 채워진다. 강 위에 떠 있는 수백개의 촛불과 등불이 물결처럼 흘러가고, 바람을 타고 떨어지는 불씨가 까만 밤하늘 위로 은하수를 그린다. 이 장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500년 넘게 이어져 온 함안의 가을 풍속, ‘낙화놀이’라는 살아 있는 전통이 만든 순간이다.
동시에 낙화놀이는 불빛과 소리의 향연이자, 공동체의 기억과 정서를 품는 시간이다. 이날 강변에 모인 사람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문화의 주체가 된다. 올해 이 전통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16일, 일본인 관광객 1000명을 초청해 ‘한정판 낙화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의 콘셉트는 ‘한 번뿐인 여행’이다. 축제와 문화 체험, 지역 여행이 하나로 엮이는 경험이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소원지 쓰기’ 부스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각자의 소원이 적힌 종이가 조심스럽게 강 위로 띄워지는 순간, 축제의 첫 번째 마법이 시작된다.
강변 장터에는 붕어빵, 막걸리, 전통 떡 등 향토 먹거리가 줄지어 서고, 낙화봉을 활용한 굿즈와 특산품이 여행의 기억을 완성한다. 관광객들은 행사 당일 전후로 입국해 2박3일, 또는 4박5일 일정으로 한국 여행을 즐긴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해 소규모 시범운영에서 출발했다. 당시 관광객의 뜨거운 반응은 함안군과 낙화놀이보존회, 한국관광공사가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올해 상반기 한국관광공사는 일본 도쿄·오사카·후쿠오카 지사, 현지 여행사 30여곳과 협업해 특별 상품을 구성했고, 9월 초까지 900명이 예약했다.
2025년 7월까지 누적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약 191만8000명이다. 이는 2019년 같은 기간의 192만8000명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352만명으로 역대 최대였던 2012년 이후 침체했던 일본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는 징후다. 안전과 익숙함을 중시하는 경향, 비용 경쟁력, K컬처의 지속적 인기가 그 배경으로 꼽힌다. 공사는 이러한 흐름을 지방 관광 활성화의 기회로 삼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한국 지방 미식 30선’ 캠페인도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원 왕갈비, 대구 막창, 춘천 닭갈비, 전주 막걸리 한 상, 광주 떡갈비 등 지역별 대표 음식을 1인분 단위로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부산과 제주에서는 간편결제 서비스 ‘와우패스’를 연계한 ‘n차’ 방문 마케팅을 진행한다. 지역 결제 시 캐시백과 경품 혜택을 제공하고, 디지털 스탬프 랠리로 주요 관광지와 쇼핑 명소를 연결해 재방문을 유도한다. 20~30대 여성 관광객을 겨냥한 K뷰티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한국 뷰티 플랫폼 ‘강남언니’와 협업해 뷰티 브랜드 체험·쇼핑을 연결한 스탬프 랠리를 운영하고, 웹툰 기반 관광지 개발로 MZ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공사 관계자는 “낙화놀이와 같은 지역 축제를 중심으로 일본인 관광객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을 경험하도록 콘텐츠를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끝난 1990년대가 되자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인류 문명이 최고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달이 더해져 세계인이 평화로운 한 마을 주민처럼 살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발 관세전쟁은 기대와 다른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냉전 시대 이후의 세계는 초강대국 미국 일극 체제였다. 일극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개방성과 자유주의도 압박을 받았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경제력에 대한 신화를 무너뜨렸다. 세계적인 불황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포퓰리즘 운동이 급부상했다. 저자는 “포퓰리즘 운동은 암울한 현재와 ‘좋았던 시절’을 대비시키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노동계급의 경제적 곤란을 개방적인 이주 정책과 국제적인 산업 경쟁 탓으로 돌린다”면서 “세계화의 약속이 허망하다고 느끼는 수백만명의 사회적 경제적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이용했다”고 썼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을, 유럽에서는 이민자를 배척의 대상으로 삼았다. 좌파가 점차 중도화되면서, 우파는 차별화를 노리고 정체성 정치에 더욱 힘을 쏟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반엘리트, 반세계주의, 민족주의적 발언으로 미국인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던 건 이 때문이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한 SNS는 정치 민주화의 유용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소셜미디어는 빠르게 대중적 에너지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유용할 수 있으나…파편화되고 지도자가 없다는 특성상 장기적으로 정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익명성을 앞세운 폭력적 군중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기에 반(反)자유주의적 성향에 취약할 수 있다”고 했다. SNS를 통한 극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과대표되는 한국 정치의 현실과도 맥이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