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내구제 유럽연합(EU) 정상들은 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드론 등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2일 AP통신과 폴리티코 유럽판 보도에 따르면 EU 정상들은 전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가 드론과 전투기를 동원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공격’으로 유럽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애초 2시간으로 예정된 방위 논의는 4시간 가까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도출하지 못했다.
회의에서는 폴란드·루마니아 영공에 대한 무인기 침범 사례를 계기로 적대적 드론을 탐지·격추하는 ‘드론 방어망(Drone Wall)’ 구축, 러시아 침공 이후 유럽 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1400억유로(약 230조원)를 우크라이나 지원에 활용하는 방안,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절차 신속 추진을 위한 제도 개편 등이 주요 안건으로 논의됐다. 그러나 국가별 견해차로 구체적 진전은 없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와의 대치 국면에 있다”고 했고 페테리 오르포 핀란드 총리는 “사실상 하이브리드 전쟁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러시아가 분명히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모두를 위협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회의장의 긴장감과 정상들의 강경 발언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과는 미미했다. 참석자들은 사안의 시급성에 동의하면서도 국가 주권과 직결되는 의제라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으며, 일부 외교관들은 “애초 단기간 내 결론을 기대하기 어려운 회의였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EU가 위협을 인식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대응책 마련에서는 이견이 드러났다. 친러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우크라이나 가입 절차 간소화에 강하게 반대했고, 독일은 드론 방어망 구상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제재로 묶인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두고도 갈등이 이어졌다. EU 집행위원회는 벨기에 유로클리어에 예치된 동결자산 중 만기가 도래해 현금화된 1400억유로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무이자 대출 형태의 ‘배상금 대출’을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등은 법적 문제와 대출 상환 문제를 제기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를 두고 “절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핵심 의제들이 난항을 겪으면서 EU의 대러 대응 전략은 이달 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려온 세계적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가 1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제인 구달 연구소는 이날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연구소 설립자인 구달 박사가 “미국 강연 투어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머물던 중 평온하게 잠든 채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소는 “생태학자로서 구달 박사의 발견은 과학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는 자연 보호와 복원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옹호자였다”면서 “구달 박사의 삶과 업적은 침팬지와 다른 종들뿐 아니라 인류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환경에 대한 이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는 글을 올렸다. 연구소는 “그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호기심, 희망, 연민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그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 젊은이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고 덧붙였다.
영국 출신인 구달은 26세였던 1960년 탄자니아 곰베 국립공원의 열대우림에서 천막을 짓고 야생 침팬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현장 연구를 이어가던 구달은 그해 11월 과학사에 남을 발견을 했다. 구달이 1963년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사를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구달은 당시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라 이름 붙인 수컷 침팬지가 긴 풀잎을 흰개미굴에 넣어 개미를 잡아먹는 장면을 포착했다.
이는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라는 통념을 뒤집는 발견이었다. 아직 정식 학위를 가지지도 못한 상태였던 구달은 이 발견 내용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었고 1964년에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면서 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구달의 연구 이후로 침팬지를 포함한 영장류에 대한 과학자들의 접근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침팬지는 지능이 있고 감정을 다른 개체와 공유하며 때로 전쟁도 일으키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구달의 발견에 대해 “서구 세계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구달은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나 본머스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타잔> <닥터 두리틀> 같은 아동문학 고전을 읽으며 동물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못 했고 런던에서 비서, 타자원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 1957년 한 친구의 권유로 케냐에 체류하던 중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훗날 구달의 멘토가 된 루이스 리키와 만남을 계기로 영장류 연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구달은 이후 케임브리지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언론을 통해 세계적 명성과 ‘침팬지의 어머니’라는 별칭을 얻었다. 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은 그녀에게 “어머니 대지의 자매”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고 BBC는 전했다.
동물학자 구달은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침팬지 서식지를 보존하지 않으면 종 보호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1977년 곰베 연구 지원과 아프리카 환경 보호를 위해 본인의 이름을 딴 비영리 연구소를 설립했다. 전 세계적인 야생동물 사냥·학살도 그가 경계한 문제였다.
구달은 더 많은 여성이 생태학 연구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구달의 침팬지 연구가 유명해진 뒤 ‘오랑우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비루테 갈디카스, ‘고릴라의 어머니’로 불리는 다이앤 포시 등이 영장류 연구에 나섰다.
구달은 연평균 300일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자연 보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인류가 변화할 것을 호소했다. 그의 세계여행은 숨지기 직전까지도 계속됐다. 1991년에는 어린이를 환경운동가로 성장시키는 프로그램 ‘뿌리와 새싹’을 출범시켰다. 이 프로그램에는 현재 120여개국 어린이, 청소년들이 참여하고 있다. 유엔은 2002년 구달을 평화대사로 임명했다.
구달은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2014년 11월 구달은 자신과 오래 교류해온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원장을 맡고 있던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 방문했고 생태원 측은 구달의 방문을 기념해 생태원 내 숲에 ‘제인 구달의 길’을 조성했다.
당시 구달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을 만날 때마다 어른들이 자연을 망치는 것이 그들의 미래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많은 젊은이에게서 ‘어른들이 우리의 미래에 대해 너무 많이 타협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며 “하지만 사람에게는 굴하지 않는 정신이 있고 자연은 스스로 복원하는 힘이 있기에 나는 희망을 갖는다”고 강조했다.
구달은 32권의 책을 썼으며 그중 15권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구달의 마지막 책 제목은 <희망의 책>이다.
구달은 1964년 네덜란드 사진작가 휘호 판 라빅과 결혼해 아들을 1명 뒀다. 1974년 이혼한 뒤 1975년 결혼한 탄자니아 국립공원 관리자 데릭 브라이슨과는 1980년 사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