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때 우연히 참가한 수요시위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다. 29세에 활동가가 돼, 매일 활동가로 살다 45세에 스톱. 그즈음 동고동락했던 활동가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공황장애가 왔다. 할머니들 곁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며 살았던 시간이 부정당하고 의심받고 있었다. 활동가가 아닌 나는 상상조차 한 적 없던 내 청춘을 통째로 상실한 듯한 슬픔을 느꼈다. 불면증약과 수면제, 항우울제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던 날들을 살아내고 49세에 다시 활동가로 돌아온 내게 누군가 물었다. “(활동가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내 주변에 힘들어하는 사람 있으면 손잡아주며 살고 싶어요. 지금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성소수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 그런 곳, 소외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그냥 함께 있고 싶어요. ”나는 어쩌다 활동가가 됐을까?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불평등과 차별이 없고, 골고루 복되고 평화로운 나라다. 그런데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