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지난겨울 계엄 이후 내 시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떨어져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한국 친구들과 단절된 채로 스스로 판단해야 했던 고립된 시간이 사고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내전으로까지 이어지는 내부 분열을 겪는다는 것과 그렇게 되도록 조작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됐다는 것을 자각했다.전쟁 위협이 실재적이었다는 점도 컸다. 가자지구 학살과 우크라이나전의 여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다른 어떤 운동보다 전쟁을 막는 일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분단국가라는 명백한 사실 역시 뒤늦게 의식했다. 한국사의 많은 부분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로 묻혀 있고 북한·러시아·미국과 관련한 소식은 각 언론 매체와 오피니언 리더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편집되며 발화됐다. 우리는 언제나 미스터리와 의혹이 가득한 상태에서 판단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