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ϴ�. 조선은 법전(法典)의 나라였다. 건국 직후부터 법전을 편찬하기 시작해서 국운이 기울어가는 19세기 중반에도 법전 편찬을 그치지 않았다. 조선 건국 후 2년 만인 1394년에 <조선경국전>이 나왔다. 건국에 공이 많고, 건국 직후 조선이 제도적 기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정도전의 저술이다. 3년 뒤 1397년에는 조선왕조 최초의 공적인 법제서인 <경제육전(經濟六典)>이 나왔다. <조선경국전>이 정도전 개인의 저술인 반면에 <경제육전>은 좌의정 조준의 책임 아래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것이다.이후에도 현실의 필요에 따라 법령들이 계속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자 이렇게 쌓인 법령들 사이에 모순이 생기거나 이미 현실과 어긋난 법령들이 적지 않게 됐다. 그에 따라 세조는 1455년 즉위 후에 기존의 법전과 법령을 전반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설치했다. 법령들을 자세히 살펴 현실에 맞게 확립하려는 목적을 이름으로 ...
지난 3월 25일 경북 청송 주왕산 능선을 타고 밀려 오던 불길이 주왕산국립공원 너구마을 어귀에 다다랐다. 한밤 중 화마가 덮치자 마을 주민들은 읍내로 대피했는데, 다음날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괴물 산불’은 폐가 한 채를 태웠을뿐 세간살이는 멀쩡했다.너구마을 주민 이정현씨(66)는 “마을 밖은 다 탔으니까 우리 집도 다 탔겠거니 포기하고 왔는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인근 살아 남았던 불씨도 자연적으로 꺼졌다”고 말했다. 주왕산국립공원 산림 3분의 1(3260㏊)을 태운 산불이 너구마을을 빗겨간 이유는 무엇일까.21일 그린피스가 낸 ‘보호받지 못한 보호지역: 보호지역 관리 실태 보고서’를 보면 주왕산국립공원 내 침엽수림 비율은 약 34%였고 활엽수림 비율은 약 60% 정도로 활엽수림 비율이 높다.산불 피해가 집중된 곳은 국립공원 서쪽 지역인데, 주로 침엽수가 밀집돼 있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동쪽 지역은 굴참나무 군락 등이 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