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소년법전문변호사 9월 26일 개막한 2025바다미술제가 추석 연휴에도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전시와 체험행사를 선보인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다대포해수욕장과 고우니 생태길, 몰운대 해안산책로, 옛 다대소각장, 옛 몰운커피숍 등 다대포 일원에서 바다미술제를 열고 있다.
전시 주제는 ‘언더커런츠: 물 위를 걷는 물결들’로 17개국 작가 38명의 작품 46점을 전시하고 있다. 11월 2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비엔날레조직위는 9일까지 전문 해설사가 설명하는 전시해설 행사 ‘숨은 물결 따라 걷기: 아트 & 네이처’를 진행한다. 모래, 바람, 파도의 리듬 속에 스며든 작품을 따라 걸으며 다대포 해변의 살아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오전 11시, 오후 1·3·5시 등 하루 4회 운영한다. 다대포해수욕장 내 종합안내소에서 출발한다.
낙동강 하구에서는 씨앗을 모아 만들 오미자 작가의 ‘공굴리기’ 작품을 함께 굴려보는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8일 오후 2·3·5시에 진행된다. 이날 오후 4시에는 씨앗굴리기 대회도 열린다.
바다미술제 참여작가 안체 마에브스키의 워크숍도 마련된다. 화석을 보고 고생물을 상상해 그리는 행사로 3~5일 오후 1~5시 진행된다. 전통 직조기법을 활용해 버려진 재료를 엮어보는 마타아스 케슬러와 아멧 치벨렉의 워크숍은 5일 오후 4시에 열린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는 행사로 마련된다. 4일 오후 2시 다대포해수욕장 동쪽에서는 전문 잠수부를 대상으로 전시회가 열린다. 잠수장비를 사용해 바다로 들어가 마리그리스마의 작품 ‘물속에서 만나는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이밖에 4일 낮 12시·오후 3시에는 8~13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 ‘바다에서 온 지시문’이 운영된다.
3일 오후 3시에는 ‘개발과 돌봄 사이: 기로에 선 다대포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해변 생태계를 위협하는 개발 계획에 대한 토론회가 마련된다.
자세한 일정은 2025바다미술제 공식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ㅊ. 한글 자모의 열 번째 글자. 치읓이라 이르며,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혓바닥을 경구개에 대어 날숨을 막았다가 터뜨릴 때 마찰이 동반되며 거세게 나는 소리다. 치읓은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추위를 만드는 닿소리. 치읓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출렁이는 마음이 어떻게 세상에 닻을 내렸겠나. 치카치카, 아침마다 칫솔질해서 말과 밥이 범한 거친 입을 개운하게 청소하겠나. 저만치 피어 있는 진달래 곁을 떠나 초록의 물결 걷히자 들이치는 인생의 친척들.
아, 치읓이 없었더라면 멀리서 친구가 찾아올 수 있으랴.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렵고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 사철가 눈대목을 들을 수 있겠나.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의 애국가 후렴구를 제창할 수 있으랴. 이제 꽃봉오리의 벅찬 마음도 지나 최소한으로 산다. 약방의 감초처럼 있어야 할 데마다 꼭 있는 치읓.
암소 끌던 노인은 삼척 어느 절벽에서 척촉(철쭉)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치며 헌화가를 불렀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글맞춤법도 제정하였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은 가을로 가득 찬 밤. 치읓이 제 위치를 차지한 덕분이다.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공책이라. 치읓이 없다면 책가방도 책방도 있을 수 없다. 번개 앞에서 용감한 피뢰침 같은 시 한 구절은 어디에? 마음의 상처와 함께 태운 낙엽 한 장의 추억은 누구와? 초침이 더듬더듬 진출하는 가운데 치읓의 뗏목을 타고 축하의 박수를 치네. 촛불 끄면 나타나는 흰 연기는 첫돌 때 잡았던 실 같은 초대 손님. 이 모두 치읓 있음에.
항구를 떠나는 배, 치읓이 아니라면 어떻게 뱃고동 울리며 출항할 수 있겠나. 오늘 떠오른 태양이 이 초목의 떨림에 참석할 수 있겠나. 입추, 처서 지나고 추분, 한로 따라 낙목한천 추위가 온다. 하늘의 햇볕정책인가. 월백설백천지백하니 사람도 강아지도 천하 밖으로 나간다. 거추장스러운 머리털 깎고 차분한 마음으로 을사년 추석을 보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길은 햇빛이 되는 것. 혼자 도착하지 않는 기차처럼, 아, 정말 치읓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한 사람은 폼 롤러 위에 누워 부지런히 위아래로 전신을 움직인다. 다른 한 사람은 일찌감치 침대에서 전자책을 읽다 눈이 감긴다. 그의 손에서 흘러내린 e북 리더기를 침대 맡에 두고 램프를 끈다. 잘 시간이다.
파트너는 서로의 잠을 목격하는 자들이다. 몸을 맞대고 누워 각자가 짊어진 무의식을 헤매느라 분주한 날도 있지만, 육체를 나란히 두고 밤을 통과한다. 이불을 나누어 쓰는 타인은 대체로 신뢰하는 자다. 가장 취약한 나를 열어 둔 사이니까.
어떤 새벽에는 혼자 깨어 있다. 소량의 수면제를 먹고 다시 눕는다. 누우면 잠든 사람의 굳게 닫힌 눈과 뺨, 말간 이마가 보인다. 침대 밑에는 배를 뒤집은 두 고양이가 몸을 붙이고 잔다. 보통 다시 잠든다. 그러다 어제 같은 날은, 네 식구가 한 집에 머무는 밤이 얼마큼 당연하지 않은지 생각한다. 갈비뼈 밑으로 무언가 일렁이며 지나간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던 내가 1인 가구로 지냈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 쌓은 시간과 자원을 모아 지금 하는 일에 쓰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조차 나는 알게 되고 말았다. 어떤 밤엔 누군가 필요하다. 정말로 필요하다. 생각보다 삶은 자주 지독하며 쓸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라서 더 외로워지는 밤도 있었다. 둘이 된다 해서 늘 두 배 넓어지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이해할 만큼은 여러 밤을 지나왔다. 굳이 서로 옆에 눕기로 함은, 타인도 삶도 수고스러우나 그럼에도 지독하게 얽히고 싶기 때문이다. 섞이는 땀과 정신과 견디기 힘든 폭염도 바로 그 사람이라서 괜찮아질 수 있다면.
아침이 즐거워졌다. 아침이 기다려질수록 죽는 게 더 무서워진다. 지나가 버린 뒤에 떠올릴 미래를 무서워하는 나는 지금, 기억하기 위해 애쓴다. 우리가 여기 있었다. 맑은 산 밑에서 한 시절을 보냈다. 내일은 대가 없이 도착하고 아무것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손 뻗어 오늘치 시간을 움켜쥔다. 서로 조금 더 복잡하게 사랑하고 미워하게 될 거다. 당신이 잠에 들지 못하는 밤, 베개 맡에서 보는 광경이 맘에 들기를.
방을 나누어 쓰는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들이 하나둘 눈을 뜬다. 볕이다. 따로 또 같이 손에 쥐고 있던 걸 놓고 작은 손바닥으로 주어진 세계를 움켜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