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대출 잊고 있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계엄령이 내려지고,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착륙하려던 여객기의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2024년 말은 참으로 잔혹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은 세월호 10주기이기도 했다.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억해야만 하는 일은 10년 전에도 있었다. 그 기억을 위한 에세이에서 김현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십 년을 살았다./ 살았다고 끝나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죽었다고 끝난 문장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 기억하려는 사람들, 잊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오늘은 4월17일입니다’)2014년 세월호에서 희생자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우리는 10년을 더 살았다. 시인은 ‘살았다’는 문장 뒤에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왜일까. 수많은 생명이 떠나갔는데도 멀쩡히 살아있는 우...
10년 전, 그는 거대한 빙벽 앞에 서 있다. 진짜 같은 가짜 빙벽의 높이는 13m 남짓. 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영화 특수미술’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0, 30대를 영화 특수미술의 매력에 빠져 살며 <광개토대왕> <실미도> <청련> <남극일기> 등등 내로라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미술에 참여했다. <히말라야> 제작사에서 ‘빙벽’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재료와 제작 과정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보름 만에 완성한, 다들 감탄하던 빙벽의 수명은 단 이틀.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는 스스로 빙벽을 부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완성한 작품들이 주는 만족감이 큰 만큼 공허감도 컸다. 십수 년 수입이 불안정했던 데다 어떤 배신으로 파산을 선언해야 할 지경이 된 그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빙벽을 부순 지 5년여 뒤, 마흔네 살의 그는 알코올중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