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강제추행변호사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헤어지는 마음이야 아쉬웁지만/ 웃으면서 헤어져요/ 다음에 또 만날 날을 약속하면서/ 이제 그만 헤어져요.”딕훼밀리의 노래 ‘또 만나요’(사진)는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엔딩 전문곡이다. 백화점이나 다방, 술집, 나이트클럽에서 이 노래가 나오면 곧 문을 닫으니 나갈 준비를 하라는 시그널이었다. 나이트클럽을 가득 메웠던 청춘들은 이 노래가 나오면 하나둘 인근 포장마차나 집으로 향했다.그룹명인 딕훼밀리는 음악을 깊게 파는 그룹이라는 의미로 ‘딕(Dig)’을 썼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언어순화정책 때문에 ‘서생원가족’으로 개명했다. 리더 서성원의 성(姓)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드러머인 서성원을 리더로, 기타 이천행, 베이스 박수호, 키보드 문옥, 보컬 김후락·김지성, 테너 색소폰 이박무가 원년 멤버다.나이트클럽 등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첫 앨범을 낸 건 1974년. “해도 잠든 밤하늘에 작은 별들이/ 소근대는...
10년 전, 그는 거대한 빙벽 앞에 서 있다. 진짜 같은 가짜 빙벽의 높이는 13m 남짓. 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영화 특수미술’ 쪽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20, 30대를 영화 특수미술의 매력에 빠져 살며 <광개토대왕> <실미도> <청련> <남극일기> 등등 내로라하는 영화와 드라마의 특수미술에 참여했다. <히말라야> 제작사에서 ‘빙벽’ 의뢰가 들어왔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재료와 제작 과정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보름 만에 완성한, 다들 감탄하던 빙벽의 수명은 단 이틀. 촬영을 마치자마자 그는 스스로 빙벽을 부쉈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완성한 작품들이 주는 만족감이 큰 만큼 공허감도 컸다. 십수 년 수입이 불안정했던 데다 어떤 배신으로 파산을 선언해야 할 지경이 된 그는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빙벽을 부순 지 5년여 뒤, 마흔네 살의 그는 알코올중독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