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11일을 돌아본다. 망설이는 마음을 뒤로하고 오후 8시경 어두운 정장 차림으로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마지막을 위해 홀로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신림동 반지하방에 살다가 폭우로 밀려들어온 빗물에 방이 순식간에 잠겨 도시 한복판에서 황망하게 사망한 가족의 장례식이었다. 세 명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던 빈소에는 정치인들의 조화와 노조 조끼를 입은 조문객들이 이 죽음의 맥락을 말해주고 있었다. 봉투에 ‘시민’이라고 적고 헌화한 후 돌아왔다.이 참사 이후 늘 그렇듯 대한민국은 잠시 떠들썩했다. 저 취약한 공간에는 면세점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중년의 가장, 그의 발달장애인 언니, 그의 노모, 그의 어린 딸이 살고 있었다. 정치인들의 마음은 늘 희생자의 눈물로만 열 수 있기라도 하는 듯 유난히 홍수 참사가 많았던 그해 여름은 반지하를 없애겠다는 정치권의 언어가 난무했다.현실은 달랐다. 2022년 여름 참사 당시 서울시 반지하 가구 수는 20만 정도로 추정...
우리는 더이상 자고 있지 않았다, 우울의 시계장치 속에 누워 있었기에그리고 시곗바늘은 채찍처럼 휘었다,그리고 시곗바늘은 재빠르게 뒤로 되튀어 피가 맺힐 때까지 시간을 채찍질했다,그리고 당신은 차오르는 어스름에 대해 말했다,그리고 당신 말들의 밤에 열두 번 나는 당신이라고 말했다,그리고 밤이 열렸고 열린 채 머물렀다,그리고 나는 눈 하나를 밤의 품에 안겨주고 다른 하나는 당신 머리칼 속에 땋아주었다그리고 그 두 눈 사이에 도화선을 얽히게 했다, 열린 정맥을 ―그리고 어린 번개가 헤엄쳐 다가왔다. 파울 첼란(1920~1970)오월이 오면, 파울 첼란의 시가 떠오른다. 아우슈비츠, 검은 우유, 암호, 가스실, 유골단지 이런 단어들을 지나갈 때마다 광주의 골목 어딘가에서 소년, 소녀들이 달려와 살려달라고 등 뒤에서 소리치는 것 같다.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시인의 영혼은 언제나 “우울의 시계장치” 속에 누워 있었다. “시곗바늘은 채찍처럼 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