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단도직입]“기후위기 대처 못하면 진짜 위기…구슬 꿸 실용적 리더십 중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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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121.♡.249.163) | 작성일 | 25-05-30 21:34 | ||
‘피크 코리아(Peak Korea)’. 대한민국 경제성장이 정점을 찍고 둔화하는 현상을 우려하는 신조어다. 이 말처럼 우리 경제 현실은 처참하다. 경제성장률은 급전직하하고, 수출은 정체되고, 내수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불안과 가계빚 증가는 진행형이다. 자영업자·노인·청년 모두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여기에 트럼프발 관세폭탄까지 덮쳐 외우내환 상황이다.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할 시기에 대통령은 내란을 일으키고, ‘경제통’을 자처하던 한덕수·최상목은 ‘부자감세’ 등 윤석열표 정책을 밀어붙이며 세수 부족을 심화시키다 추경 골든타임마저 날려버렸다. 더 큰 문제는 미래는 현재보다 더 암울하다는 것이다. 경제 운용 성적표가 국내총생산(GDP)이라면 앞으로 성적 향상의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잠재성장률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일 KDI는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6년 안에 0%대로 떨어지고, 2041년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이 추정한 잠재성장률 전망보다 더 낮아졌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어두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걸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박양수 대한상의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을 지난 21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박 원장은 GDP 통계와 잠재성장률 추정을 담당했던 한은 경제통계국장 출신이다. 박 원장은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고려하면 총요소생산성을 얼마나 올리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이 총요소생산성 향상의 중요 과제가 됐다”고도 했다. 사실 해결책은 정답처럼 이미 나와 있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그는 그걸 꿸 수 있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인내와 소통으로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실용적 리더십이 필요하고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 미국보다 낮아질 수도 - 지금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 수준이라고 보는데, 그게 어느 정도 위험한 겁니까. “최근 글로벌 보호무역과 지난해 말 계엄령으로 그보다 더 떨어졌을 가능성을 고려하면 1%대 후반까지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잠재성장률이 그 정도라면 우리 경제가 2%대 성장률만 나와도 고성장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죠. 잠재성장률 2%대에 진입할 때도 ‘우리가 벌써 미국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왔다니’ 하고 위기감이 높았는데, 최근엔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더 낮은 거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 잠재성장률은 어떻게 추정하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잠재성장률은 현재까지의 성장률 추세를 뽑아 산정하는 시계열접근법이 제일 간단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4~5년 경제성장률 평균치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미래를 전망하지 못합니다. 한국은행이나 KDI가 미래 잠재성장률을 전망할 땐 생산함수접근법을 씁니다. 실제 생산량과 이를 위해 투입되는 자본, 노동, 생산요소들의 관계를 나타내는 생산함수를 활용해 추정하는 방법이죠. 잠재성장률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노동과 자본을 투입해 그 나라가 생산할 수 있는 최대 GDP가 얼마냐는 개념입니다. 미래의 노동과 자본은 취업자 수와 자본량으로 산출해냅니다. 이를 위해 통계청의 생산가능인구 전망과 경제활동참가율 추세, 자본장비율 등 자료를 이용합니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실업률이나 자연가동률도 과거 회귀분석을 통해 산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평균 공장가동률이 78%쯤 되니 이 정도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 이를 미래 자본량 전망치에다 곱하는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동과 자본 이외 기술혁신·제도적 환경 등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모두 총요소생산성(TFP)으로 봅니다. 이를 정리하면 성장률 Y=f(K,L,A)라는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f는 함수값, K는 자본, L은 노동, A는 총요소생산성을 말합니다.” - 복잡하네요.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면 결국 인구가 줄면 취업자도 줄고, 취업자가 줄면 1인당 자본장비율 같은 자본량도 줄어드는 거니까, 결국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인구 감소 영향이 큰 것이네요. “인구가 늘지 않으면 전체 수요가 안 늘어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투자도 덜 되잖아요. 이민자를 받아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거나 고령인구를 활용해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일 수 있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은행 전망을 보면 잠재성장률에 대한 노동기여도는 2030년대 초반엔 제로, 2036년부터는 마이너스가 됩니다. 자본도 사람들이 없으니 투자도 덜 하게 돼 낮아집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초반에 0.2%까지 내려가는데 이건 0 부근이라서 성장이 멈춘다는 얘기고, 2046년 이후로는 역성장하게 된다는 전망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고려하면 총요소생산성을 얼마나 올리느냐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관건이 됩니다. 총요소생산성의 성장기여도는 2010년대만 하더라도 1%포인트가 넘었는데, 이게 2020년대 오면서 0.3%포인트로 나옵니다. 구조혁신에 실패하면서 2010년대 이후로 총요소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 그럼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 완화와 혁신, 성과보상 체계 개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등이 필요합니다. 이미 여러 국가기관에서 제시한 방안이기는 하지만 이게 실천하기 힘들고, 너무 당연하고 총론적인 얘기라 잘 체감되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하면 좀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한국은행에서 산업 쪽으로 와서 보니 비슷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더라고요. 환경과 관련해 새로운 벤처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게 규제예요. 예를 들면 카본블랙이라고 하는 타이어의 핵심 소재를 폐타이어에서 얻는 기업을 세워 재생 친환경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규제 체계에서는 친환경과 관련 산업 분류가 정교하지 않아서 그 사업을 폐기물 업체로 허가받아야 해요. 그렇게 되면 타이어를 태우는 시설은 수도권은 안 되고 어디 시골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또 공장을 짓는 자금을 구하려면 신사업이 아니면 대출을 안 해주는 거예요. 규제 때문에 공장 짓기도 어렵고 대출도 막히는 거죠.” 꼭 필요한 규제 아니라면 과감히 없애야 - 혁신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한데 오히려 규제로 막고 있다는 게 현장에서 나오는 간절한 얘기라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꼭 필요한 규제가 있으면 그것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자는 네거티브 시스템을 하자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 얘기도 나온 지 꽤 된 거죠. 이런 요구의 출발점은 사회적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시도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 결과 기술이 개발되면 기존 기술을 사용하던 곳은 긴장하고, 인력과 자본이 움직이고, 그러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거죠. 똑같은 업종이라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곳이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게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결과를 만듭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대기업 정규직은 높은 임금을 받지만 생산성을 높일 유인이 비정규직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반대로 비정규직은 노동생산성은 높지만 자기계발과 창의성으로 아이디어를 낼 여유 자체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효율적인 시장이나 신기술 개발 분야에 노동력이 투입되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되는 게 전제돼야 한다고 봅니다. 더구나 지금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일수록 기본 생존권은 보장이 필수라고 생각해요. 사회안전망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역동성을 늘리는 토대라는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보장돼야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잖아요. 이 밖에 창의적 교육 시스템, 불확실성 속에서도 투자를 이끌어내는 모험적 금융 시스템 확충 등이 필요하죠.” - 잠재성장률을 구하는 방식을 이해하니 구조개혁이 왜 필요조건으로 나오는지 알겠네요. 그런데 말씀처럼 구조개혁 방안들은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 아닙니까. 지금까지 그런 일들을 못하고 있는 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정치력 부재가 원인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실용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구나 지금은 대통령 선거 기간이고요. 새 정부는 국가 재도약을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짜내고 실행해야 합니다. 제가 <리빌딩 코리아>에서 제시한 기본 아이디어가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적은 성장산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개선과 구조개혁을 해내자는 겁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대내외적으로 굉장히 불확실합니다. 이를 돌파할 마중물로 종합적인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 전제가 정책의 일관성이 정권 임기를 넘어 유지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떤 정책을 시작할 때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잖아요. 결국 리더는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자가 아니고 진영과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인내와 소통으로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걸 할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향후 2~3년이 그래서 피크 코리아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윤석열 정부 극단적이며 실용성 부족 - 지난 정부의 리더십은 전혀 그렇지 않았네요. 그런 측면에서 새 정부가 윤석열 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소통 없이 이념·진영 간 극단적 대립을 유발했고, 경제정책의 철학적인 면에서도 일관성이 없었던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념·진영 간 대결을 여실히 보여준 게 에너지 정책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에너지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첨단산업에는 에너지가 엄청 필요하잖아요. 또 기후위기 극복이나 통상에서도 탄소중립에 뒤떨어지면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이 커요. 그렇다면 에너지믹스 정책이 필요했지만 윤석열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 산업은 억제하고 원전을 위주로 했어요. 전 정부에서 탈원전 한다니 정책을 완전히 반대로 간 거죠. 기업에 있어 정책 일관성이라는 게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동안 국가 정책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했던 사람이나 기업들은 뭐가 됩니까. 연금개혁이나 의대 증원 같은 건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합의를 조금씩 늘려가는 실용적 전략이 필요했는데 ‘모 아니면 도’ 이런 식으로 밀어붙였죠. 전혀 실용적이지 않고 극단적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세상에는 통하지 않아요.” - 경제정책에서의 교훈은요.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전략기술 확대, 기회발전특구 도입, 일·가정 양립 포함 저출생 대책 등은 긍정적 평가가 가능해요.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시장주의를 말하면서도 금융에선 신관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직접 개입했습니다. 또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면서도 지출구조조정 없이 감세를 추진하다 계속 대규모 세수 펑크를 냈고요. 중장기 성장에 필요한 R&D 예산도 삭감했다가 쇼크가 있었습니다. 이런 건 종합적인 비전 없이 표피적 접근으로 정책을 운용한 결과입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계약이나 약속 이행 등에 따른 비용을 증가시켜 사회적 신뢰를 훼손시키게 됩니다. 반면교사 삼을 게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죠.” -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한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한은의 설립 목적이라 할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통화정책을 펼치는 게 중요합니다.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켜야 자원배분 효율성이 높아지고 잠재성장률 제고로 이어집니다. 정부나 기업 사이드에서는 저금리를 선호하고 있지만 금리가 장기간 너무 낮으면 자산시장이 불안해지고, 기술 개발보다 부동산 투자로 지대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해져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또 금융위기 같은 쇼크가 오면 기업들의 기존 설비들이 무용지물이 됩니다. 물가안정이나 금융안정을 통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게 한은의 역할인 겁니다.” 중앙은행도 탄소중립 지원 역할 고민을 - KDI는 최근 잠재성장률 보고서에서 한은에 성장세 둔화에 따른 실질 중립 금리 하락으로 향후 명목금리 하한이 제약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건 저금리를 주문한 거 아닌가요. “KDI 주장은 글로벌 구조적 경기침체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같은 걸 우려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지지 않도록 완화적 통화정책을 주문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실물경기는 침체인데도 금융안정에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서 실물경제를 과도하게 침체시켜선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조화시켜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KDI 우려처럼 우리도 일본처럼 고령화에 따른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최근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와 통상전쟁에 따른 공급망 단절, 탄소배출 비용 발생 등에 따라 도리어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한은이 충분히 고려해 통화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이바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자원배분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강하게 펼치시더군요. “2050년경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글로벌 목표하에 세계 각국이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에 나서고,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이 무역장벽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니까 기후위기 대응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이 주력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공정도 바꿔야 하고 에너지도 바꿔야 하는데 이건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한국은행도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역할에 충실하려면 이 부분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거죠.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시장중립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녹색금융중개지원대출, 기후대응채권 매입 등 중앙은행의 자금배분 정책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엄청난 자본이 들어가는 기후위기 대응에 통화정책 당국이 나몰라라 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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