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드김서준 잡채는 화려한 색감과 다채로운 맛으로 명절 음식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잡채에 든 고기와 채소 덕도 있지만, 당면을 빼놓을 수는 없다. 곡물의 전분을 굳혀 만든 당면은 그 자체로는 맛이 없다. 하지만 당면은 함께 무친 고기와 채소의 맛과 향이 스며든 데다 질감도 독특해 풍성한 입체감을 준다.
그런데 원래 한국식 잡채에는 당면이 없었다. 17세기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잡채 레시피는 삶은 닭고기와 다양한 나물로만 이뤄진다. 1896년에 나온 <규곤요람>의 잡채에도 당면은 없다. 잡채에 당면을 넣기 시작한 때는 구한말. 한국에 건너온 중국인들이 요리를 푸짐하게 보이려고 녹말을 굳힌 당면을 음식에 넣었다. 당면은 1910~1920년대 평양, 사리원 등에 당면공장이 생기면서 대중화됐다. 재미있는 점은 지금도 중국 현지의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식 부추잡채나 고추잡채에는 채소와 고기만 들어간다.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던 시기인 19세기 말, 동아시아는 전근대적 질서가 해체되던 혼란기였다. 음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본인이,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이 한반도로 밀려왔다. 이들과 함께 짜장면·우동이 들어왔다. 호떡·단팥빵 같은 단 음식도 등장했다. 우리 전통의 관점에서 보면 생소한 음식이었다. 이 음식은 신문물이었지만 혼돈이기도 했다. 대중에게는 역사도 음식도 선택이라기보다 강요였다.
대중들은 이런 혼란 속에서 당면에 주목해 잡채를 재탄생시켰다. 중국인이 간과한 당면의 축제성에 주목한 것이다. 혼란의 시기에 빛나는 창의성이었다. 당면은 잡채뿐 아니라 순대, 갈비탕, 떡볶이 등에도 들어간다. 그렇지만 명절과 생일 같은 의례에 쓰이는 당면 음식은 잡채가 유일하다. 잡채만이 당면 음식 가운데 잔치 음식이라는 지위를 꿰찼다.
이는 잡채가 갖는 경계성 덕분이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축제의 특징 중 일상에서 벗어나 공동체와의 동질감을 경험하게 하는 ‘경계성(liminality)’에 주목한다. 특히 음식은 일상과 다른 특별한 시공간을 축제 참가자에게 선물하는 경계성의 핵심이다. 잡채 같은 별식에는 있지만 김말이 같은 일상식에는 없는 효용이다.
동그랑땡 역시 20세기 이후에 당면 잡채처럼 축제성을 새롭게 획득한 음식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산 콩, 옥수수가 풍족해지고 일본에 돼지고기 수출이 늘면서 국내 양돈업이 빠르게 발전했다. 그런데 조선 왕실의 연회 기록인 <의궤>를 봐도, 얇게 뜬 소고기로 만든 육전은 있어도 간 돼지고기로 만든 동그랑땡은 없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1960년 이후 대중화된 돼지고기 동그랑땡을 명절과 제례음식에 포함시켰다. 가장 대중적인 돼지고기 음식인 삼겹살이 명절 음식에 끼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1876년 개항 이후, 음식 대중들은 잡채와 동그랑땡을 명절과 제의에 쓰이는 축제 음식으로 선택했다. ‘초연결’ ‘초지능’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인 지금, 어떤 음식을 우리 민족의 축제 음식으로 새롭게 낙점할지 궁금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사회서비스전자바우처시스템’이 소실되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의 급여지급 및 장애인 바우처 사용에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데이터가 복구되면 정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장애인 가정과 활동지원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사 A씨는 최근 소속된 지역 장애인지원센터로부터 이달 2일에 받기로 한 9월 급여를 절반만 받을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A씨는 “현재는 근무시간을 입력하는 단말기도 작동하지 않아 모든 일지를 손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갖고 있는 단말기에는 ‘에러코드-20041’만 떴다. 네트워크 접속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활동지원사들은 단말기에 근무시간이 등록돼야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급여지급에 문제가 생긴건 화재로 사회서비스전자바우처시스템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활동지원사들의 근무내역을 수기로 작성해 센터가 취합한 자료를 제출하면 급여를 정상지급하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선 수기 입력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응이다.
1일 한 장애인지원센터 관계자는 “우리 구에 있는 장애인들만 센터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노원구, 광진구, 성동구, 용산구, 종로구 등 너무 다양하다”며 “센터 상근인력이 3명밖에 없는데 그 많은 활동지원사들의 근무일지를 일일이 수기로 취합해 각 자치구 동주민센터로 넘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센터 관계자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활동지원사가 번갈아 2명이 지원되는 경우도 있고, 1명의 활동지원사가 여러 명의 장애인을 돌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들을 수기로 처리하라는 건 정말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했다.
정부가 시스템 복구에 나서고 있지만 언제 정상화돼 급여가 제대로 지급될지 알 수 없다. 동대문구의 한 센터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우리도 복구될 때까지 4주 이상 걸릴 수 있다는 통보만 받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 시작이 코 앞이지만 활동지원사들이 휴일·야간 활동 지원시 근무시간을 어떻게 산정해야하는지도 공지되지 않았다. 신경숙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단말기가 작동하지 않으니 주말·휴일·야간에 일하는 활동지원사는 활동지원 시간이 얼마나 추가로 차감되는지 계산하기 복잡하다”라며 “보완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활동지원사 급여에 필요한 돈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매월 5일, 10일, 25일 총 3번에 걸쳐 각 센터로 지급되기 때문에 기존에 전달된 돈이 일부 있을 것”이라며 “활동지원사분들이 급여를 전부 못 받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기로 근무시간을 정확히 작성만 해놓으면 데이터가 복구되는대로 미지급분을 모두 문제없이 지급하겠다”라고 했다.
활동지원사 급여 지급과 바우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서 장애인 가정은 불안해하고 있다.
30대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최경화씨(62)는 “직전 활동지원사가 그만둔 후 다시 구하는 데 2년이 넘게 걸렸다”며 “활동지원사 급여 정산과 지급이 불안한 상태로 사태가 장기화돼서 아들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 활동지원사가 떠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하다”고 말했다.
바우처 결제도 차질을 빚는 가운데 각 가정에 명확한 관련 가이드라인이 전달되지 않아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24세 자폐 스펙트럼 장애 자녀를 둔 이모씨(54)는 지난 29일 센터에서 ‘바우처 결제가 불가능한 상태이고, 소급 결제를 하려면 기록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은 뒤에는 후속 조치를 듣지 못했다. 이씨는 “장애인 중에는 활동지원을 받지 않으면 일상이 유지되지 않는 사람이 있어서, 손발이 묶이는 것과 같다”며 “누구도 안심시켜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